Tuesday, 8 March 2011

국가가 뭐해준게 있다고

수많은 케이블채널 중에서 '신라의 달밤'이라는 영화에 눈길이 간다. 오래전 아마 집에서 본거 같은 느낌이다. 걸출한 배우들이 경주에서 벌이는 그냥.. 코미디..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차승원의 양아치 연기가 물오르기 시작한 시기이고 이종수가 고등학새으로 나오던 그런 시절. 김혜수를 놓고 차승원과 이성제가 자존심싸움을 한다. 왠지 인생역전 이야기가 재미있고 조폭영화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할때쯤이라 아직은 조금 생소했던 조폭들의 모습이 신선하고 좋았다. 적당한 선을 지켰다고나 할까. 그 이후에 나오는 조폭영화들은 좀 너무하지 않았나 싶을정도로 막나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채널을 돌리다 눈길을 끄는 영화는 곧잘보곤한다. 이런 문화 콘텐츠에 대해선 나는 좀 관대하게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 영화도 봤다. 경주를 주름잡고 있던 조폭 리더가 신흥세력의 등장에 긴장한다. 그러다 그에게 인생의 마지막 예비군 통지서가 날라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조국이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다고!!" 인상깊은 연기에 인상깊은 대사였다. 왜나면. 예비군은 남일이 아니니까. 가끔은 그런생각을 했을법도 하다. 남자라면. 조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나. 뭐 이념적인, 이데올로기적인것을 따지는것이 아니라 나는 그냥 뭐해줬냐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똥이니까. 그러다 문득 그냥 토익시험이 생각났다. 조국이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다고 맨날 토익만 보고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요근래엔 토익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서러운 감정이 북받쳐오른다. 왜 난 "프리"한 영어가 아닌 "후리"한 영어를 배우고 있어야 하나 신세한탄도 해본다. 하지만 그것이 "프리"하던 "후리"하던 어쨋든 가진놈, 난놈이 임자라는 사실도 사뭇 깨닫는다. 친구의 요청으로 학교 도서관에서 토익문제집을 몇권 대여했다. RC는 국가의 운명과 직결된 대졸자 취업난의 치열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수많은 연필자국이며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맞지 않는 남루함이란. 알맞은 보기의 기호에 체크한 선마디 하나하나가 그 끝의 날이 서있었다. 나는 서둘러 덮지 않았다면 아마 책의 살의에 눌려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 책은 무지하게 더러웠다.

그래서 깨끗한 LC책과 해설서 문법서만 빌렸다. 한번에 왕창 대여하기가 여간 낯간지러운것이 아니었다. 이미빌려놓은 책도 있었고 만약 한두권 못빌린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나 고민했다. 표지의 진취적인 문구들이 무색하게 허름해진 이 책들은 아마 백권이 있어도 모자라다고, 고민했을것이다. 아무튼 그러면 문법책을 버리기로했다. 꾸역꾸역 가방에 밀어넣고 김밥을 가지고 나는 나만의 장소로 향한다. 그러다 '나도 하긴해야되는데..'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예전에 외우다만 영어사전을 다시 꺼내든다. 

"신라의 달밤"에서 고등학생들이 조폭에게 찾아가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다고 한다. 조폭 리더는 말한다. 반에서 20등안에 들으면 받아들이겠다고. 무식한 얘들은 받지 않는다고. 그 다음날부터 그들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마찬가지 아닌가. 조폭같은 대기업에 우리는 껴달라고 이야기하고. 그들은 무식한 얘들은 못쓴다고 토익점수를 가져오면 껴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토익을 공부한다. 그들만의 세상에 끼어들어가기 위해서. 

대기업에 취업하기 싫어서 창업을 한 대학생의 일화가 소개되었다. 얼마전에. 잘했더라. 그러니까 소개했겠지만. 아닌 친구들이 더 많다. 내 주위에도 있으니까. 그들도 결국 토익을 요구할꺼다. 세상은 어차피 그렇게 돌아가게 되있으니까.

USVA에서 이번 신입회원 절차를 좀 복잡하게했다. 좀더 로열티가 높은 회원으로 구성해서 활동의 집중도를 높이자는 취지다. 좋을수도 있다. 하지만 별로다. 난 그러게 싫다.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고민이다. 그럼 난..?




신라의 달밤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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