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December 2013

배가 좀 고프다.

머리 끝에서 시작한 정신적 압박이 온몸을 타고 발끝까지 전달된다.

엄지발톱이 유난히 길어진 것 같아서 바짝 깎아 봤는데 그 끄트머리에 거무틔틔하고 자그만하게 붙어 있을 정도로 압박은 심했고 어려웠고 온몸에 퍼져 있었다. 마치 마약처럼 내 몸은 그것들을 막아내기 위해 애썼던 것 같고 그렇게 몇달을 치대던 둘은 이제 지쳐버렸다. 더이상 누구의 편도 아닌 소강상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눈치없는 것들은 그냥 무시해 버리려고 한다.  

뜨거운 물, 앉아 있으면 얼굴에서 땀이 운동회 계주하듯이 흘러내릴 만큼 뜨거운 물 안에 간신히 몸을 구겨서 담그고 있었다. 크지 않은 욕조에 작지 않은 엉덩이는 충분히 불편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잠이 잘 왔다. 나도모르게 너무 오래 자버렸고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전파, 잔소리, 생각, 인터넷, 신경, 기억 마저 차단되버린 욕조 속에서 향기가 나는 시간을 보냈다. 무색무취했던 근래의 굴레 속에서 가장 향기로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말내내 달고 살던 재채기때문에 잠에서 깼고 물이 미지근해졌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차단되어 나만의 시간이 흐르는 이 곳은 하나의 코스모스 그 차체였고 그 안에 모든 물리 법칙이 살아서 내 몸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 우주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고 조금 더 뜨거운 물을 들이 부었다. 입가에 땀이 흘러들어가 짭짤했고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들었고 혓바닥으로 핧아 먹었다. 단순히 땀이라기 보단 내가 이 우주 속에서 창조한 어떤 것이었고 그 안에는 또 그곳만의 우주가 형성되어 있었다. 무수히 많은 우주 속에서 나만의 우주를 찾는 다는 것은 아마 불교의 명상 그것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부지런히 분침이 움직이고나서야 나는 모든 것들과의 혼돈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다행인 것은 나의 우주를 만나고 온 직후라 크게 외부로 인해 요동치지 않을 수 있는 평정심이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고요할 수 있었다.

는 거짓말이야. 

무엇과도 마주하지 않았던 그 시간은 더더욱 많은 것들과 접하게 하였다. 많은 것들을 생각의 중력으로부터 밀어냈건만, 생각의 중력은 더욱 많은 공간을 왜곡시키며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잠시 눈을 붙인 몇 분을 제외하고 나는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도 아니고 나에게도 아니었다. 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혼잣말도 아니었고 대화도 아니었다. 중력과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공허한 공간 속을 떠다니는 얼음덩어리처럼 내가 뱉은 이야기들은 공허하게 어딘가 떠다니고 있었다. 사실 나는 분명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들이었을텐데. 왜 가지 못하고 허공을 맴도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도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 우주안에서는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충분한 힘을 실어서 이야기를 보낸다고 한들 빛보다 빠르지 않고서야 이미 멀어질대로 멀어진 거리를 가는데에는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아무튼 모든 것을 비우려고 했지만 결국 더 많은 것들이 채워져버렸다. 마치 명상을 하려고 아무생각도 하지 말자 하면 기억나지 않던 옛날의 것들조차도 생생히 떠오르는 것처럼. 뜨거운 물이 차가운 공기를 통해 가진 것을 속수무책으로 빼앗기듯이 나의 생각들도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허공에게 빼앗겨 버렸다. 빼앗긴 만큼 다른 생각으로 채우게 되고 또 다시 허공에 빼앗기고 그러면 또 다시 생각을 채우고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물이 식어버릴때까지. 생각이 식어버릴때까지.

다행인건 그나마 생각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너무 많이 빼앗기지는 않았다는 것과 그렇게 빼앗기고 포기하다보니 쉽게 결론이 나왔다는 점이다.

문제를 쉽게 푸는 것이 좋은 것은 알지만 항상 쉽게만 풀수 없다는 불능의 이유로 인해 나는 많은 가능성과 상황들을 열어두고 있다. 고집적이고 고질적으로 억척스러울 때가 가끔 있는데 그런 것들 마저 물 속에 흐물흐물 녹아 내려버리고 말았다. 한껏 품고 있는 씨앗처럼 물 속에 불려져있던 겉껍질이 풀어져내렸고 새로운 새싹을 틔운 것이다. 그 새싹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접어 넣는다고 다시 들어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는 생각보다 새싹을 틔우는 시간이 길뿐이고 시발점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마치 나무의 100년 후 200년 후를 간직하고 있는 씨앗처럼, 그래서 더욱 껍질이 단단해지고 오래 걸리는 씨앗처럼, 싹을 틔워 세상을 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미 그 생각은 안에 들어있었지만 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마침내 싹을 틔운 순간, 몸을 닦고 나왔다. 한동안은 어찌할 수 없이 허무하게 앉아서 랜덤하지만 지속적인 자극을 텔레비젼을 통해 섭취한다. 첫 울음 소리를 내는 아기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나의 멘탈은 오메불망 다시금 세상과 연결되는 첫 울음소리를 기다린다. 

그 첫 울음은 일주일째 정지되어있는 휴대전화 진동소리로부터 시작됐다. 알량한 와이파이에 의존하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이 물체는 가볍게 몇번 울어제낌으로 나와 세상이 이어졌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나와 세상은 이렇게 맞닿아 있으면서 서로의 접촉면을 부식시켜가고 있다. 그 울음이 더욱 잦아질 수록 세상과 나의 접촉은 더 없이 넓고 진하게 진행됐고 부식은 산타라도 온 마냥 신이 난 듯 했다. 세상의 것들을 너무 많이 받아들이며 산화되어가는 나를 살리기 위해선 고이 받아들였던 세상의 것들을 다시금 토해냄을 통해 환원시켜야 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받아들여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은 어쩔 수 없다지만 아직 희망이 남은 부분들은 하루 빨리 환원시켜야 했다. 주고 받음의 과정은 그래서 복잡하고 짜증나고 귀찮은 법이다. 덕담도 선물도 카톡도 문자도 누군가가 나에게 산화시키면 반드시 환원시켜야 했기에 너무나도 귀찮았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든 진행되는 것이 세상이고 그런 무한한 반복이 인생이고 그러한 인생이 하나의 우주를 만들면서 인생의 부피를 가지게 하는 것이겠지만, 견디기가 힘들때가 있다. 지금이 그럴때일 지도 모르고.

약을 먹어서 그런지 잠에 대한 필요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하루종일 시달린 감기를 떨쳐내기 위해 감기약을 먹었다. 몇달내내 시달린 생각도 떨쳐내고 싶을 때 먹는 약이 필요한데 의사, 약사랑 상의를 해봐야 하는지 혼자서는 도통 찾기가 어렵다. 

내일과 모레는 조금 더 방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나 가볼까 생각도 들고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도 든다. 생각을 떨쳐내는 약은 의사, 약사랑 상의할 게 아니고 바람과 공기와 햇빛과 의논해보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쨋든 내가 만든 우주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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