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3 March 2011

출발

포르쉐 911이 속력을 낼때의 기분은 아마 드라이빙을 해본자만이 알것이다. 그저 달리고 달리는게 좋았다. 게다가 아우토반에서의 질주는 불꽃튀는 경주라기 보다는 무한의 우주를 빛의 속도로 여행하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이었고 아울러 지루한 외로움이 묻어났다. 지금의 나와 같을까. 그녀와 함께 있을땐 지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독일의 대음악가 바흐의 선율에 맞춰 이야기를 하곤 했다.속삭이곤 했다. 그때의 아우토반은 끝없는 우주가 아닌 희망을 향한 4악장이었다. 그녀는 사라지고 나홀로 남은 지금,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잭 블랙처럼 혼자 비틀즈의 Day tripper를 흥얼거리며 엑셀러레이터를 더욱 힘차게 밟는다. 조금의 관성이 느껴지며 관성을 없앨순 없나.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그것은 언제나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다. 이제 어느덧 독일에 정착한지도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버틸수 있었던건 바로 그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웃고있는 한장의 사진때문이었다. 모든것이 엉망이되어 흩어져버렸다고 생각했다. 나의 인생은 제 2롯데월드 꼭대기에서 떨어져 터져버린 큰 젤리같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주워모으려해도 그러지 못하고 여기저기 더럽게 벽에 달라붙어 조금씩 말라비틀어져가 결국 빗물에 씻겨 내려 하수구에 쳐박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썩어 문드러져 세상의 영양분이 되는것이 아니라, 세상 제일 밑바닥에서 풍겨나오는 악취가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세상에 남아 있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머나먼 이국땅에서 나는 그렇게 말라 비틀어져갔고 썩어 문들어지고 있었다. 이제 다 끝이라고, 아니, 이제 진짜 벌을 받을 시간이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난 나의 기억을 그렇게 해석했고 그녀는 나의 기억을 그렇게 기록했다. 나에게 그녀는 죽음의 그림자라 여겨졌고 그녀는 나를 삶의 마지막이라 기록했다.

내가 뿌리치고 나왔던 아버지의 얼굴, 어머니의 눈물이 보였고 그동안 방황하던 길거리, 번뜻이는 칼날,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바, 그 속의 네온사인, 아래 앉아 있는 Jonh. G, 그의 얼굴을 잊으면 안된다. 하지만 네온사인 아래 그는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Jonh. G가 아니다. 당신은 누구야. 묻지만 희미한 미소뿐이다. 그를 잡으려는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들썩이는 가슴을 그녀가 천천히 가라앉혀준다. 나에게 맞지 않게 너무 하얀손이다. 나는 그녀에게 맞지 않는다. 하루빨리 그녀에게서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파멸할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한다. 나는 어차피 없어졌었어야 하니까. 지금의 이순간 자체가 나에게는 사치이니까, 죄악이니까.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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