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6 April 2011

늦은 아침

다음날 아침 수업이 없는 날이다.

의도적으로 전날에는 친구와 술을 마신다.

일주일 중 술을 마시고 다음날 편히 잘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순대국과 소주 한 잔을 하며 그간의 못했던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깍두기의 알싸함과 시원함이 소주의 쓴맛을 없애주고

순대국의 구수함이 모든 상황을 정리해준다.

먹은 깍두기로 따지면 무 한개는 족히 먹었겠으며

국물만 얻어서 부어 먹은 순대국이 서너 그릇은 되겠다.

오래된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하며 정신 없이 마시고 먹고 이야기한다.

늦게 시작한 술자리는 늦게 끝나기 마련

벌써 1시다.

이제 각자 집으로 가야지. 계산은 내가 할께.

맨날 얻어 먹기만 하는거 같은데.

뭐 이런거 가지고.

그러고 나서 집에 도착했다.

적당히 취한 기분이 좋다.

적당히 사리분별 못하는 지금이 좋다.

적당히 잊고, 적당히 걱정하고, 적당히 즐거워하는 지금이 좋다.

적당히 쌀쌀하고, 적당히 비틀거리며, 적당히 흥얼거릴수 있는 지금이 좋다.

내일은 수업이 없으니까 부담없다. 푹 잔다.

아침이 밝았고,

이제 일어나야 하는데.

몇 달만에 정말 말도 안되게 갑자기.



섹스가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성욕에 대한 감정은 많지만

나 자신이 섹스리스라고 느껴질만큼 직접적인 성관계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은 달랐다.

무척이나 섹스가 하고 싶었고

구체적인 체위마저 머리속에 맴돌아 한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이런 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성욕이라는 것은 만만하지 않은 놈이라서

쉽사리 그 감정을 정리하고 침대를 박차고 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한시간을 넘게 침대를 굴렀던 걸까.

결국 일어난 시각은 9시

한 시간을 몸부림 친 후에야,

난 정욕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음을 예상했다.

학교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나는 항상 섹스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성만 눈에 들어오고 들고 있는 신문은 오히려 훔쳐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린것이다.

이 모든 갑작스런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사히 학교에 갔고, 무사히 수업을 들었고, 무사히 과제를 하고,

무사히 집으로 들어가는 듯 했지만

도저히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떤 연유에서일까

사정없이 정말 사정도 없이 밖을 떠돌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럴 때 술친구들로부터 연락이라도 오면 기분좋게 내가 술이라도 살텐데

하필 그 새끼들은 필요할 때 연락을 안하는 경향이 있다.

이리저리 방황을 하다가

나는 동네의 바에 들어갔다.

혼자서 술을 마실만한 공간은 그곳밖에 없었다.

양주를 사 마실 형편은 물론 안되고, 맥주를 시켜 마셨다.

정확히 1635ml 정도?

한 시간동안 그 정도 맥주면 나는 아주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다.

기분이 좋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다.

여기가..어디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흡사 홍상수 감독 영화에나 나올 법한 허름한 여관 풍경이 내 주변에 펼쳐져 있다.

??

내가 뭐하고 있는거지? 아무것도 모를 만큼 어제는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내 옆에는 처음보는, 정확히 기억 끊긴거를 포함하면 두번째보는, 여자가 내 옆에 나체의 몸으로 누워있다.

침대 머리맡에는 꽉 알이 찬 생선처럼 내 정액이 꽉찬 콘돔이 비릿내를 풍기며 자리잡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는 우리의 속옷이 밤사이의 치열함을 나타내며 여기저기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기억을 되짚어 본다.

이건 뭔가 잘못돌아가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며, 나는 여기 왜 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마지막은 바에서 나와 2차로 갔던 뚝배기 집에서 해물순두부를 먹으며 소주를 기울이던 것이다.

그 이후로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베게커버에는 "JJ HOTEL" 이라는 촌스러운 상호가 새겨져 있다.

JJ HOTEL...

이제 기억이 났다. 우리 동네에 있던 호텔이다. 항상 지나가면서만 봤지 한번도 들어와 본적도, 들어오려고 시도했던 적도 없던 곳이다.

멀리 가지 않았고, 이상한 곳이 아니라는 점이

이상하게도 이런 상황에서도 위안이 되었다. 멍청한 인간이다.

멍청한건, 너다.

그나저나,

내 옆에서 나체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지?

어디서 처음 만난거지?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까지도 나는 정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텐더 여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거나 그런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만의 상상을 하며 조용한 바 구석에서 취하기 위한 행위가

그들과 의미없는 대화를 하는 것보다는 더욱 좋았다.

생각하면 할 수록,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섹스가 하고 싶었다. 하루종일 발기 상태였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그런 상태로 계속 있었는지도 신기했다.

맥주를 마시다 보면 혹은 술을 마시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쉽게 여는 법,

대범해지고 본능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 상태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어떤 느낌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흡사,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무언가 밤꽃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면

그녀는 무언가 밤꽃 냄새를 모조리 빨아 들이고 있는 듯 했다.

그것이 그녀와 나의 차이라면 차이였고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었다.

통성명도 없이 곧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처음의 만남부터 의도가 확실한 관계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은 법인 듯 했다.

형식적인 2차를 가지 않았나 싶다. 괜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였을까.

아직은 한번도 이런 적이 없던 내 지난 과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을까.

많은 안주가 필요하지 않았으며 많은 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의 마음은 좀 더 조용하고,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독립된 공간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억이 없다.



심지어 그녀와 관계를 가지던 순간마저도 기억에 없다.



나는 무슨 말을 했고

무슨 행동을 했고

무슨 스킵쉽을 했을까.



그녀는 무슨 말을 했고

무슨 행동을 했고

무슨 스킨쉽을 했을까.




하지 않았나?


아니다.


내 몸이 했다고 말하고 있다. 콘돔도 있다. 그 안에 수 많은 쥬니어들도 있다.


했다.


하지만 이것은 한것도 아니고 안한것도 아닌 상태인것 같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는 사이 그녀가 뒤척이며 잠에서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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