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놓여있던 손에 익은 샤프를 집어들었다. 엄지 손가락 끝에 살짝 먼지가 묻었다. 서랍장 한 귀퉁이에서 구겨져버린 빈 답뱃갑처럼 꽂혀있던 공책을 꺼내 빈 곳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제법 오래된 추억들과 다시 마주한다는 것은 들이 마시는 공기마저 그 시절의 것으로 돌아 가게 만들게 했다. 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았다. 낡고 녹슬어 늘어져 버린 자전거 체인처럼 간직하고 있던 기억들도 모두 늘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힘있게 기억의 페달을 밟아 보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기억이라는 것은 그렇게 힘없이 산화되어가는 쇳덩이처럼 천천히 스러져가는 것이니까.
우연히 보게 된 그 곳의 풍경은 옆구리를 파인 조각케익 같았다. 기억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종소리가 어지럽게 울리는 광장에서 초라했지만 아름답게 있었다는 것도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서툴다. 그런 사실을 스스로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래서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게 나의 기억을 되돌려 줄 복원작업이 필요했다. 샤프를 잠시 내려놓고 손 끝에 묻어있는 먼지를 뭉쳐본다. 단단하게, 더욱 단단하게. 동글게, 더욱 동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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