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0 October 2013

몰래몰래

우리집 식구들은 일찍잔다. 9시 뉴스를 보는 것보단 6시 아침뉴스를 보는 걸 더 좋아한다.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일찍자는 편이다. 그래서 10시에만 들어가도 늦게 집에 들어왔다는 죄책감이 들정도니까.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나만의 은밀한 시간은 이 때부터 시작이다. 모두가 잠든 사이. 나만 깨어 있는 달콤한 나만의 시간이다.

나는 조용히 냉장고 문을 연다. 몰래 숨겨둔 맥주 병을 소리없이 꺼낸다. 티비를 켜고 볼륨을 0으로 낮춘다. 이미지만 보는 것도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일이거니와 다행히도 요즘 텔레비젼 예능 프로그램은 너무 친절해서 자막만으로도 모든 내용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꼴꼴꼴 따른 맥주를 쭙쭙쭙 마시면 사실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다. 이렇게 항상 나만의 은밀한 저녁시간은 여러가지 행위들을 통해서 나에게 삶의 의욕을 가져다 준다. 그래도 이런짓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전화가 끊겼다. 핸드폰 요금이 밀렸나보다. 생각보다 그런 일에 둔감한 나는 언제부터 얼마나 밀린지 계산하는데 서툴다. 아무튼 일이 이렇게 벌어졌고 통화도 데이터도 끊겨버려서 무기력해진 폰을 보았다. 나에게 진짜 이름이 있다면 아마 한심일 것 이다. 이걸 어떻게든 메워야 했지만 그럴 돈이 마뜩찮다. 생각보다 금액도 만만치 않았고 당장에 돈이 들어올 곳도 없었고. 어려모로 몇일동안 골머리를 썩히며 있었다. 모두가 자는 시각, 나의 생각들은 내 머리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와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나의 생각들은 일제히 텔레비전 옆에 있는 저금통에 모여 있었다. 무슨 작당모의를 하고 있는 건가 가서 지켜봤다. 내 생각들은 저금통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한참을 있다가 그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내 생각을 저금했네. 조금은 보탬이 됐으려나.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했는데. 그 사이 내 생각들은 저금통 안에 들어 있는 만원짜리들을 빙 둘러싸고 협박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장을 저금통 밖으로 끌고 나와 임무를 완수 했다며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공허해진 거실공기가 현실적으로 들이켜지며 정신을 차렸을때 내 손위엔 몇번씩 접힌 만원짜리가 3장 있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무언가로 가득찬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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