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사는게 바빠서 잠깐 맘놓고 쉴 시간도 없다. 아. 시간은 있다. 근데 여유가 없다. 아무튼 먹고 살려면, 민족고유의 명절에 남들같이 해외여행도 가고 면세점에서 그럴듯한 명품 지갑도 하나 사고 해외가서도 메뉴판 눈치안보고 배불리 먹으려면, 바빠야 한다. 부지런히 벌어야 한다. 부지런히 벌다보면 나도 남들처럼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겠지,하고 생각하며 오늘도 정신없이 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걸 잊을 수가 있냐.
"알았어. 미안해"
"그렇게 미안하다고만 하면 다 끝난거야? 어떻게 더 대화로 풀어나갈 생각은 안하는거야?"
"그게..난 그런 줄 몰랐지..정말 미안해 우리 다시 이야기 시작해보자"
"됐어. 이제와서 무슨 대화야 이런 대접받으면서 풀고싶지 않아"
"그럼 어떻게해야되는거야 도대체"
"지금 나한테 화내는거야? 뭘 잘했다고 나한테 화를 내?"
라고 말할거 같은 상황.
우리 만나기 시작한지 3년이 조금 넘었다. 애교부리며 여우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우리가 사귄지 몇일째인지 확인해보던 그녀는 조금씩 사라져가서 이제는 무표정하게 능숙한 손놀림으로 나의 쥬니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콘돔을 정리하는 여자가 되있었다. 담배 냄새도 비릿한 정액 냄새도 이제 잘 구분을 못하는거 같기도 하다. 나 역시. 다를건 없지만.
다른 커플과 평행이론이 성립한다고 볼수도 있을만큼 우리는 평범한 사랑을 했었던건 아닌가 싶다. 그런면은 그녀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이자 숙명이라는 변명도 하고 싶지만. 어찌되었건.
요즘 들어 그녀의 눈빛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곤한다. 이렇게 비난하곤한다. 이렇게 쏘아 붙이곤한다. 이렇게 신음하곤한다.
Don't you remember the reason you loved me before.
사랑을 시작할땐 사랑의 이유따윈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그녀와 깊은 관계가 되었고 사랑을 하면할 수록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조금씩 식어갈 수록. 사랑엔 굉장히 많은 이유들이 필요하다는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이 없다면. 더이상은 못버틸 날이 올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두려움이지 않을까 싶다. 사랑을 잃음에 대한? 익숙한것과의 결별에 대한? 그녀의 젓가슴과의 헤어짐에 대한?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 수만가지 이유를 만들어가면서 우리는 그렇게 3년 남짓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둘다 한번쯤은 해봤을법한 결혼이야기는 단 한차례도 오가지 않았나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했던가. 아마도 우리는 이별이라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서로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러다 문득. 이것은 나만의 판단, 착각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지금도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있다.
Please Remember me once more. When was the last time you thought of me.
미안해. 나도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난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항상 우리 함께한 그곳을 지날때마다. 아직도 난 너를 생각해.
우리는 결국 헤어졌었고 거칠게 마른 나무처럼 뒤틀려버린 우리는 다시 돌아갈수없음을 느꼈다.
사실 그렇게 자기최면을 하고있었던거일지도 모른다. 내가 더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니가 싫어져서 너의 단점들만 보이는 내가 너무 싫어라고 말하는거보다는. 함께 섹스를 하는것이 너무 기계적이라 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고 다리만 아파서 간혹 다른 직장동료를 생각하며 한적도 있어라는 말보다. 좀더 그럴듯해 보였을까. 막상 난 아무말도 할순없었다. 한마디도 하기 힘들만큼. 그녀는 내 앞에서 울고있었다. 나는 의아해 했다. 이런 반응이 있을줄은 몰랐다. 우리의 사이가 점차 말라갔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봄이와있던것처럼 우리의 이별이 와있는 줄 알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난 아니었어"
라고 그녀는 대답했었다. 뒤이은 눈물은 그동안의 생각이나 행동은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확신을 가지게 했지만. 나란 놈은 더이상 그녀를 가질 수 없었다. 정확히 그녀는 나를 가질 수 없었다. 우리는 이제 끝이라는 말이다.
"미안. 이제 나도 어쩔 수 없어"
계산서를 집어들고 나는 그렇게 술집을 나왔다. 한손엔 카드 영수증, 한손엔 조금 젖은 티슈를 움켜쥔채. 흐릿한 명동거리를 한동안 배회했다. 나를 벼랑으로 밀어넣듯 번호를 지우고 문자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흐릿한 명동거리는 무척이나 부산했기에 오히려 비가 좀 내리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와 갔던 Pub, 파스타집, 옷가게들이 지나가며 생각했다.
'난 왜 기억나지 않지.. 난 왜 그토록 그녀를 사랑했었으면서 기억나지 않을까'
문득, 모든것에 대한 의심은 나를 다시 그녀가 있던 술집에 들어가게 했고 우리의 끝을 보았던 테이블엔 반쯤 비어있는 맥주잔 두개만이 9회말 원아웃에 친 병살타처럼 남아있었다. 결국 나란 놈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것은 아닐까.
나에게 물어보았다.
Don't you remember the reason you loved her before
저벅저벅저벅. 누군가 걸어온다. 말끔한 정장차림의 신사는 나에게 점점 다가온다.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에게 명함을 내민다. 명함엔 "메피스토펠레스"가 적혀있었고, 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며 사라졌다.
Never mind you will find someone like her.
정말.. 그렇게 될까..?
Adele의 Don't you remember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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