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 않은 기간을 알고지냈다. 그렇게 일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에게 이런일이 일어 날거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다. 줄곧 기분좋은 상상을 해본적은 있었다. 함께 한다면, 뭐 이런 식의 나만이 할 수 있는 가정같은것들 말이다.
그러니까, 상상도 못해봤다는 이야기는 아니란 말이다.
작년 여름, 우리는 처음 만났다. 대학교동아리. 서로의 존재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으니, 오래도 참 오래다. 그렇게 인연이 닿았고 단체라는 틈바구니속에서 조차,
서로를 더욱 알아가려는 시도조차 없었던거 같다.
더욱 확실히 이야기하자면, 그녀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가지 보탠다면 나에게는 슬픈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 나도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 않는 일이기도 했기에 슬피 울거나 하소연따위는 정말 할 생각조차 안했었다.
재미없게도,
그렇게 일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문자를 주고 받는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달리 의도하지 않았지만 유독 그녀에게는 자주 연락을 하지 아니하였다. 왜. 왜?
나도 모르는거 자꾸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안했는지는 당신들이 더 잘 알것이다. 당신들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수많은 전화번호 중 연락을 자주 안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왜 안하는가?
그렇지. 그 이유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굳이 해야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것말고도 모르는게 많았다. 내가 갑자기 아침에 그녀에게 문자를 했고, 이것도 왜했는지 모르겠도, 그녀도 별 생각없이 답문을 보냈고, 이것도 왜 보냈는지 모르겠고, 나 또한 그렇게 답문을 보내며 무료한 방학 아침시간을 까먹고 있었다.고 이야기해도 될만큼 영양가 없는 대화들이었고 해도그만 안해도 그만. 혹은 차라리 책이라도 읽거나 영어단어라도 한자 더 외워라 라고 충고를 들을 정도의, 한마디로 Killing time. 이라고 말해도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외로 즐거운 시간이었고 나에게 꼭 들어맞는 독득한 프린팅의 반팔티셔츠를 입는것처럼 들뜨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문득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한번이라도 제대로 이렇게 대화를 한적있 있던가.
대화를 했다기 보단 많은 시간을 그녀와 함께 했었다. 함께 동아리활동을 하는 친구들와 그녀이야기를 한적이 몇번 있었고, 나는 그때 칭찬을 몇번 했던거 같기도 했다. 캠프를 함께 가거나 다함께 MT를 갔을 때 모두 한방에서 함께 잤었고, 유독 나는 그녀 옆에서 잤던거 같은 기억은 있지만 그것이 사전에 바삐 준비하고 섭외해서 만들어지는 콘서트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로 시작하는 성경이 당연하고 순리에 맞듯이 나는 모임에 나갔고 잠을 잤고 그녀는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물흐르듯 그 누구도 왜? 라는 반문을 하지 않을 정도의 일이었단 말이다.
흥분했다. 쓸데없는 말까지 너무 많은 걸 이야기 했다. 아무튼.
그녀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아침의 문자는 갑작스럽게 너무 신선했고 마치 내가 알고 있던 그녀가 아닌 처음알게된 다른 여자와 연락을 할때의 그런 설레임마저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술이나 한잔하자는 제의를 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 역시 흔쾌히 승락을 했다.
여느 것과 다르지 않게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하고 시간을 정하는 일은 순조롭게 진했되었고 나는 되도록 다른 친구들이 올 수 없게 신경써가며 답문을 보냈다. 그 일은 어렵지 않았고(물론 나와 그녀 모두 어떠한 목적성을 띄지 않고 있다는 가정이 있었으므로 가능했었다) 둘이서 우리집 근처 역세권에서 만나기로 정해졌다.
그 순간 동시에 지갑의 돈을 확인하고 모자란돈은 다른 경로를 통해 확보해 놓고 어디를 갈까 무엇을 할까 따위의 고민을 '손은 눈보다 빠르게, 생각은 손보다 빠르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술을 마셨고, 여라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사소한것부터 지금까지 들을 수 없던 세세한 이야기까지.
술에 좀 취한 우리는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겨우 알아차리게 되었다. 집이 그렇게 먼거리는 아니었지만 혼자 돌려보내기엔 마음이 좀 쓰이는지라 같이 그녀의 집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녀의 만류가 있었지만 취기에 더는 고집을 피울 수 없었나보다. 그렇게 좌석버스에 몸을 싣고 우리는 그녀의 집에 가고 있었다. 그녀는 버스 창가에 기대어 정신을 추스르고 있었는지 자고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순전히 취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녀의 머리를 나의 어깨에 당겨놓았다. 그녀는 잠시 머뭇 했지만 바쿠스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그대로 꽤나 시간이 흘렀고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몹시 궁금했기에 잠시 쳐다보았다.
잘도 잔다.
생각하며 있다가 문득, 이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그게 아니라 원래 이뻤다. 왜 몰랐지?모르긴 알고있었지만 연이 아니라 생각했겠지.애써 아니라 되뇌었겠지.
아무튼.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태양이 너무 뜨거워 아랍인을 쏜것처럼..?
에이씨 그냥 별 이유없이, 아마 이유를 꼭 알고싶다면 그녀가 갑자기 굉장히 이뻐보였을만큼 취해있었고 그런상태의 나는,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한마디로
본능적으로, 그러니까.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그 당시를 설명하라면 NBA 챔피언 결정전 올랜도와 시카고 불스의 마지막 경기 4쿼터 경기는 올랜도 리드 조던은 공을 잡았고 분홍빛 혀를 내밀며 불스의 마지막 3점 슛을 던진다. 이 골의 성공여부에 따라 이번 시즌 챔피언이 결정되는 순간. 농구장을 가득매운 관중들의 숨소리 마저 너무 시끄러워서 거슬릴만큼의 정적. 손등을 타고 흐르는 코카콜라 표면의 물방울이 끈적하게 피부를 벗어나는 소리마저 들릴만큼의 정적, 모두들 멈춰있는듯한, 그 한복판에서 그녀와 나는 버스를 타고 있었고 나는 자고있는 그녀에게 입맞춘다.
같은 느낌이랄까.
나조차도 멈춰버린듯하고, 그 사이 그녀는 눈을 뜬다.
그 다음은 ↓↘→ 주먹 = '싸대기' 인가 싶었는데,
웃었다.
↓↘→ 주먹 = '미치도록 이쁘게 수줍은 웃음' 이었다.
싸대기보다 더 쎈 기술인거 같은건.. 내가 받은 충격은 더 심하지 않았나 싶기 때문일까.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좀더 깊은 키스를 했고, 갈곳을 잃은듯 방황하던 우리의 청춘은 살포시 그녀의 손위에 얹은 나의 손을 그녀가 다시 잡아주는것으로, 그렇게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우리는 말없이 그녀의 집으로 향했고,
우리는 아무일없던 듯이 친한 오빠 동생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귀엔 Adele의 『Someone like you』의 한구절이 들려왔다.
Never mind I'll find someone like you. I wish nothing but the best for you too.
그렇게 나의 27살은 시작되었다.
흔해 빠진 하룻밤 연애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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