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벽을 따라 회색의, 조금은 푹식한, 그리고
은색의, 조금은 차가운 팔걸이에 신세를 조금 지는 것에 대해 더이상 미안함을 가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것에 대하여 더이상 어느 누구도 미안함을 가지지 않는다고 생객했었기 때문일까.
어지러움과 꽤나 격한 탈수를 느끼며, 그런 나도 의자에게, 그러니까
그들에게 내가 짊어지고 있는 중력을 넘겨주는 것에 대해, 그러니까
고통을 주는 것에 대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에라이. 내친 김에 더 고통스럽게 더 신세를 질테니 마음대로 해보라고,
엉덩이를 조금 더 깊이 집어 넣는다.
조용한 실내, 몇 몇 검은 그림자의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깊숙이 집어 넣은 엉덩이 만큼, 한껏 늘린 내 목 근육 만큼,
의자는 단말마의 비명소리를 지른다.
내가 지나온 복도는 폭이 넓고 고요했으며 게다가, 길었다.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멀고 먼 복도가 나왔고, 또 다시 나왔고, 그러한 과정을 반복했다.
두꺼운 유리문은 가볍게 열리고, 무겁게 닫혔다.
가볍게 열려버리는 두껍기만한 유리문에게 굉장히 서운했고,
재빨리 그리고 무심히 닫히는 유리문의 모습에,
온갖 정이 다 떨어져 나가는 듯하여 행여나 다음에 유리문 너 이새끼 또 마주친다면.
내 온 힘과 열정을 다하여 너의 온몬에 나의 지문자국으로 짙게 더럽혀지게 하리라.
떨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다짐했다.
그렇게 지나온 복도를 다시 천천히 되짚어 걸어가며.
하나를 가져오고 하나를 주어야 하는.
물물교환같은건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더 큰 존재는.
하나를 가져가고, 두 개를 가져가고, 세 개를 가져가고, 전부를 가져간 뒤.
하나만 돌려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닌가.
하나를 주고, 두 개를 주고, 세 개를 주고, 전부를 준 뒤.
하나만 남기고 전부를 되 가져가는 것은 아닐까.?
아닌가.?
아니면.
처음부터 그 무엇도 제대로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이것을 생각하고 판단하기에는. 그렇게 넓고 길게 느껴졌던 복도조차 한없이 짧고 좁은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12번째층에, 게다가 19번째방에 있었다가.
B1번째층에, 게다가 14번째방에 갔다는건.
간단한 숫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이고.
목젖은. 움직여야 보배인건가. 그렇지 않은 것은 차마 부끄러워서 보여줄 수 없었던건가.
파란 글씨가 가지런히 써있던 새하얀 천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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