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17 October 2013

쌍둥이 역설

너무나 똑같은 맥주캔 두 개가 나란히 있다. 하나는 마셨고, 다른 하나는 마시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습관처럼 열어본 냉장고 안에. 너무나 똑같은 맥주캔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작고 차가운 맥주가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낮에 마신 술 때문인지 피곤했고 조금이라도 눈을 붙였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마땅한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하철을 타는 수 밖에. 오전, 오후 두 번의 미팅이 있었고 그 사이에 하나의 약속이 있었다. 시간이 팍팍하지만 겹치지는 않았다. 오전 미팅은 12시면 끝내고 나와야 했다. 그래야 그 다음 약속에 맞춰서 갈 수 있었다. 그냥 나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말 한 마디만 하고 그대로 나오면 되는 것이다. '제가 이 다음 스케쥴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라고 괜히 멋쩍게 웃으면서 나오면 나는 마음편하게 다음 약속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시계는 이미 12시 4분을 넘어서고 나는 아직도 그 한 마디 말을 못하고 마음만 졸이고 있었다. 내가 굳이 그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제 곧 끝날 것만 같은 분위기이기도 했고 다들 한창 이야기하고 있는 와중에 그런 이야기를 불쑥 꺼내기도 싫었다. 싫었을까? 아니면 못했을까? 나는 우유부단한 걸까? 아니면 전체의 분위기를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인 것 일까? 보통 사람들은 대게 첫 번째 이유일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12시 15분에 그 자리가 다 끝나고 나오게 되었다. 서둘러 지하철을 탔고 간신히 약속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 럭키. 이제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내 핸드폰은 몇일째 정지 상태이다. 그래서 먼저 연락을 하지 못한다. 그저 기다릴 수 밖에. 누군가에게 이 사정을 이야기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지하철을 탈때마다 와이파이를 잡으려고 노력하는게 지랄 맞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왜 나는 내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서 더 많은 어필을 하지 않는 것일까 생각해봤다. 내가 나를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나의 생각은 서로다른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 둘 사이에 언제나 많은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둘은 똑같이 나에게서 나온 생각이다. 쌍둥이. 그 둘이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다시 만났을때는 결국 쌍둥이 역설처럼 서로 다른 몸도 나이도 생김새도 변해있는 것이었다. 나는 결국 그렇게 두 가지 생각들 사이에서 또 다시 고민하고 선택하고 후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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