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차. 춥다는 말이야. 전혀 폭력적인 뜻은 아냐.
갑자기 공기가 차가워졌고 매입 입던 옷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어. 뭘 더 껴입어야 하나 잠깐 생각해봤어. 길게 생각할 시간은 없지. 대체로 그 따위 고민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니까. 뭘 더 껴입을지 보다 내 뒷통수를 때리는 생각들이 좀 많아야지.
깊은 심심함.짙은 지루함. 이런 말들은 이제 사라져 버렸어. 당연히 그 자리는 시간 없어. 바빠.로 가득가득가득가득가득해졌지. 무엇을 하던 이제 더이상 그랑그랑한 워낭소리같은걸 들을 일 따윈 없다고 봐야겠어. 휴대전화 벨소리라면 모를까.
지겨워. 그런데 막상 아무것도 없으면 너무 외로워. 어떻게든 부여잡으려고 노력해. 깊이 있게 농도 짙게 심심해보고 싶은데 이제는 심심함을 느끼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니 심심함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면 또 바빠질테지. 그러고나서 얻는 심심함은 주로 노력대비 효과로 봤을때 제로섬 게임이랑 다를게 없지. 남는게 없어. 허무하게도 나는 아마 그런 시대 속에서만 살아왔던 걸지도. 무언가 모자란 부분은 알아서 챙겨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에게 지금 결여되어 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심심함이 아닐까 생각해.
심심해본 적이, 심심해할 틈이 없잖아, 예를들면 아침에 뜨는 해를 보고 보고 보다가 머리 위에 올라간 해를 보고 또 계속 보다가 저기 너머로 지는 해까지 본다던지. 자기 몸보다 큰 먹이를 들고 한없이 움직이는 개미가 몇 마리나 있는지 세어본다던지. 구석진 곳에 앉아서 하염없이 땅을 파본다던지. 그런거 있잖아. 도저히 할게 없어서 하는 그런 일들. 그런거 하고싶잖아. 그냥 하루종일. 말 그대로 하루를 종일 심심함으로 채우는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면하고 모두들 바라고 있지 않아? 그렇지 않아?
그렇게 하루종일 뭐할껀데? 라고 물어보지마. 아무것도 안해도 우리 너무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잖아. 하루쯤 헛되이 보낸다고해서 인간 쓰레기가 되는것도 아닌데 왜 그것도차 허락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어.
완전한 심심함. 순수하게 아무것도 안한다고 그렇게 해볼려고 노력해보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어. 이건 딱 하는 꼴이 명상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어렵다는 말이지.
사색이라는 단어가 있어. 많이 써보지 않았고 해보지 않아서 굉장히 생소하고 어색한 단어지. 사색이라는 건 역사책에 나오는 옛날 옛적 왕을 대하는 그런 느낌과 흡사해. 뭔가 대단한거 같은데 나랑은 별로 상관없는 듯한 느낌. 사색. 그게 책을 뚫고 내 눈앞에 나타난거야. 당황스럽지만 어떻게 해야할지는 천천히 생각해보기로했어. 사색이 날 잡아먹지는 않으니까.
날이 차. 가만히 가만히 숨을 죽이고 생각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날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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