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17 December 2013

최후의 만찬

배고픔을 채우는 것을 넘어서 먹는 것을 통해 만족감을 얻는 다는 사치를 누리게 된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봐도 얼마 안됐을 것이다. 지금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먹지 못해서 죽고 있지만 그나마 식욕을 충족하는 것 이상으로 만족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정보를 모두 동원하여 그 중에서도 맛집으로 가고자 하고 몇시간을 기다리면서 음식을 먹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고 타국으로 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각종 맛집, 요리에 관한 잡지, 기사, 정보들이 넘쳐나고 좀더 나은 식재료를 위해서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은 이제 낭비가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이러한 문화가 자리잡기 한참 전에 이미 식사의 의미를 한층 격상 시킨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최후의 만찬'이 아닐까 싶다. 

차린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라는 말이 들린다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정말 차린 건 많이 없어 보이지만 구색은 갖추고 있다. 빵, 고기, 과일, 와인 등 그 시대에 자주 먹지 못할 만한 음식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모아놓고 식사를 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른다는 것과 그것의 의미가 굉장하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을 아낌없이 풍족하게 먹는다는 것, 그것이 아마 인류가 처음으로 행하기 시작한 낭비, 소비욕이었지 않을까. 그렇게 배부르게 차려놓고 정신없이 먹으며 최후를 맞이한다. 

가족들과 함께 오랜시간을 보냈다. 되도록 간소하게 먹는 편이라 우리가 먹은 건 주로 백반이랄지, 간단한 찌개랄지, 조금 신견써서 나온 생선구이 정도다. 그냥 평범한 점심을 같이 먹는 것 뿐인데 엄마는 왜 눈시울이 빨게져서 그나마 먹던 밥도 그만 먹었다. 그럴듯한 고기반찬도 와인도 멋진 샹들리에도 없었지만 함께 했던 식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아빠는 식욕이 도는지 한 그릇 더 가져다 드시고 바깥음식은 별로 안좋아하는 엄마도 군말없이 식사를 하는 모습이 내 숟가락을 더 무겁게 했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뱃속도 전부 한없이 무거워서 입맛에도 돌덩이를 달아 놓은 것처럼 푸석푸석했다. 

처음이었나.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한 건 내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인 것 같다. 몇시간이고 이야기를 하면서 더 나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엄청난 감정적 소비, 관계적 소비가 발생하여 몸 속에 수분이 말라가는 듯했고 신경전달이 둔해져서 모든 감각이 둔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지쳐버렸고 내가 해왔던 일들에 대해서 꼼꼼히 짚어보게 되었다. 번데기처럼 웅크리고 나의 A부터 Z까지를 다시 더듬어 올라오게 되었다. 처음이었던 그 순간까지. 

차 속에서 아빠와 하는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별로 관계없거나 꼭 지금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이야기들뿐이었다. 민영화가 어찌고 대통력이 어찌고 시골에 이장 누가 어찌고 그런 따뜻한 날 내리는 눈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는 듯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가 한 마디씩 던진다. 유인구와 직구의 조합은 배트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 이 순간만큼은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고 오히려 아빠는 조금 망설이셨던 것 같기도 하다. 단순히 내 생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여운이 남아 수많은 이야기들이 바닥에 녹아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순간에도 긴장감이 맴돌았다.

집에 돌아와서 온 가족이 모였다. 만0세까지 합치면 6명. 빙 둘러앉아 '차린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메뉴를 먹기 시작한다. 차린 건 없지만 다들 한 먹방 찍을 법하다. 소리만들어도 잊혀지지 않을 이미지가 떠오를만큼 소리부터 냄새까지 빠지지 않는다.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대사가 엄마 입에서 흘러나오고 아빠는 갑자기 받아친다. 모두들 웃는데 나는 아직 웃을 수가 없다. 잘가고 있는 걸까? 잘하고 있는 걸까? 요즘 말대로 안녕하고 있는 걸까? 언제까지 이 고집을 꺽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갑자기 튀어나가버리는 건 아닐까? 나로 인해 모든 불행과 행복이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가족들은 알고 있는 걸까? 반대로 나의 불행과 행복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는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내가 이렇게 한다면 가족 모두가 안녕한걸까? 그러면 지금 내 생각대로 나도 덩달아 안녕할 수 있는 걸까? 

젊었을때보다 고개가 더 굽어져 그나마 많지도 않은 이로 푹 익은 쌀알을 한 가득 입에 넣고 김치 한 조각, 마늘짱아찌 한 조각, 찌개 한 숟가락을 떠서 우물우물우물우물 한다. 왠지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한 표정이 꼭 고사지낼때 올라오는 돼지머리 표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웃는다고 생각하면서 보면 웃고 있는거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처럼, 헷갈린다. 결국 생각과 결정의 주체는 나겠지만 아빠의 표정은 모나리자처럼 나를 헷갈리게 한다. 

그렇게 맛있게 많이 오랫동안 저녁을 먹으며 가족은 모종의 합의에 대한 행복의 만찬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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