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 끝났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이어왔다고 생각한다. 마치 릴레이 계주처럼 전혀 다른 여러명의 내가 끊임없이 돌아가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 놈은 좀 빠르기도 했고 어느 놈은 뛰는게 영 시원찮기도 했고 넘어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옆 사람 다리를 거는 치졸한 놈도 있었다. 결국 이 모든 행동이 나 자신이 행한 결과물이었고 아무튼 릴레이는 멈추지 않았고 계속 뛰었다. 바통을 넘겨주고 넘겨받는 행위는 처음엔 다부진 각오로 시작해서 재미로도 해보다고 의무감으로도 해보다고 억지로도 해보고 악으로도 해봤다. 단순히 바통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운동장 반 바퀴를 돌면서 생겼던 감정들 생각들이 조금씩 담겨서 다음 주자의 손에 그 무게감와 함께 넘겨졌다. 그렇게 바통안에는 수없이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이 쌓이면서 점점 무거워진다거나 잡기 부담스러워지게 되었고 주자를 거듭할수록 그 피로도는 점점 쌓여갔다. 다행히 릴레이 계주를 하는 주자들은 넘쳐났다. 별의별 놈들이 다 몸을 풀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생각보다는 릴레이를 잘 버티면서 달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밤낮으로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았고 운동장에 응원하던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가서 텅텅비어버렸고 함께 뛰던 다른 레인의 주자들도 하나 둘씩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유독 우리 주자들만이 끝을 모르고 바통을 넘겨 주고 넘겨 받았고 이건 흡사 뛰기 위한 것이 아닌 바통을 넘겨 받는 것에 의미가 있는, 혹은 그 바통안에 무언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담길때까지 기다리는 듯한 인상도 주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이 릴레이는 무언가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는 절대로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국 넓은 운동장에 나(들)만이 남아서 서로를 응원하고 평가하고 바통을 주고 받고 있었다. 그렇게 릴레이는 계속되었고 내심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끝이 났으면 하는 바람들이 생겼다. 이제는 바통도 너무 무거워져 혼자서 들고 뛰던 것을 둘이서 들고 뛴다거나 부러 셋 넷이 함께 들러붙어서 들고 뛰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제 계주를 처음할때의 어떤 규칙도 룰도 존재하지 않고 릴레이의 본래 의미처럼 일등을 위해서 뛰는 것이 아니라 바통을 넘겨주기 위해 뛰고 있는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무거운 바통을 주고 받으며 왜 뛰고 있는지도 모르고 힘들어도 견디며 그렇게 뛰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그 바통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열명 스무명이 함께 들던 바통마저 놓쳐버리고 말았다.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땅바닥에 떨어진 바통을 둘러싸고 나(들)이 고민에 빠졌다. 이 바통을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그러다가 다시 힘을 합쳐 집어들고 멈췄던 계주를 이어나갔다. 얼마나 많은 나의 모습들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계기였다. 이제 그 숫자는 점점 불어나 네자리 다섯자리가 되어버렸고 바통은 무게와 크기가 그게 걸맞게 커져버려서 이제 내가 어찌할 수가 없을 만큼 겉잡을 수 없게 되었다. 운동장을 도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지도 오래되었고 운동장을 벗어나 이제는 하나의 대이동처럼 변해버려서 이 물리적인 움직임을 단순히 멈출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 관성의 힘이 모든 세계를 짓누르고 있었고 그저 우리는 이 바통을 주고받는 일이 끝나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언제나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 끈질긴 싸움도, 이제는 싸움이라고 표현할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었다, 종지부를 찍는 시점이 있었고 어느 순간엔가 바통안에는 그토록 원하던 것이 담기게 되었다. 그것이 원하는 것이었는지 이제는 솔지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원했던 것이라고 그저 믿고 싶을 뿐이었다. 아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원한다고 믿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정확히 우리가 원하던 것이었다. 믿을 수 있는 것. 의심없이 믿을 수 있을만한 꺼리를 우리는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우리 눈 앞에 하얀 줄의 결승선이 보였고 지구만큼 커져버린 바통을 이고 결승선을 통과하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한 걸음 한 걸음에 대해 나는 끝이 앞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채 남겨놓은 몇 걸음에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런데. 이 결승선을 넘어서면 난 이제 무얼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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