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는데.
신생아부터 시작해서 걸음마를 시작하고 엄마 아빠를 어눌하게 발음하게 된 아이와 살고 있다. 동물들은 새끼를 낳고나면 금방 걷고 곧잘 따라 다니던데 사람은 참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 뒤에야 가능해지는 것 같다. 동물의 본능적인 감을 사람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짐승이었으면 본디 당연하게 가지고 있었을 법한 것들도 하나하나 알려줘야 하는 핸디캡이 있는 것이다. 인간이 과연 처음부터 지능이 있었을까? 언어가 발달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 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일단 생존에 있어서 본능적인 감각에 대한 부족함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살기 위해서 발달시킨 부분이 바로 언어와 지능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린 것 없이 부족하지만 많이 드세요. 라며 겸손하게 상다리가 휘어질듯한 밥상을 내놓는 장면이 같이 떠올랐다.
짧게 삭발을 한 친구와 웃고 떠들며 장난치는 와중에도 전혀 죽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댄다. 조금더 생명에 대한 후각이 발달하여 꺼져가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랬겠지. 실제로 마지막을 보았을 때 하늘로 올라가는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거나 고요한 병실을 가득채우는 일정한 크기의 심장박동수 소리라던가 정신이 혼미해져서 정신을 잃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고 그저 죽었다라는 말과 그렇다 라는 수긍의 짧은 핑퐁뿐이었다. 순간과 영원사이는 그다지 부산스러운 장소는 아닌 듯 싶었다. 이제 3년쯤 된 이야기인데 잘못 계산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빠른건지 느린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3년이라는 정확한 시간의 개념으로 견주어 보니 어딘가 모르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의미가 없어져 버렸을지 모르는 시간놀이를 하는 건 살아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지 않을까 생각했다.
단 하나의 세포가 생기는 순간부터 그 세포가 생기기 전의 일들이 가치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 시점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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