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31 August 2015

책임감

살다보니 책임감이랄지 여하튼 이런류의 단어들을 많이 보고 듣게 된다.
그것은 고결하거나 건드릴 수 없는 성역에 존재하는 단어라는 이미지로 주로 포장되어 있다.
누구나 가져야 하고 가지고 있다면 쉽게 인정을 받거나 혹여나 없다면 그만큼 쉽게 평판을 잃기도 한다. 막상 있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자기자랑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자랑같지는 않을만큼 누구나 자신만큼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당당하게 어필할 수도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책임감이 있어라는 뉘앙스보단 그래도 책임감이 없진않아 정도는 뭐 정말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정도랄까.

한 문단씩 띄울때마다 맥주 한 컵씩 마신다. 맥주컵을 잘 안 씻어서 마실때 코끝에 물 비린내 비슷한게 난다. 맥주에서도 이런 냄새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무덥고 부패하기는 술마시고 취하기보다 쉬우니까. 아무튼 한 문단을 쓰는 시간동안 마시는 건지 맥주 한 컵을 마셔야 한 문단이 나오는 건지, 굳이 나누기보다는 둘다 맞을 수도 있다. 혼자서 방에 불을 끄고 모니터 빛에만 의존하면서 더듬더듬 맥주병을 찾고 유리컵을 쥐고 소리에 의존해서 따르고 마시면서도 가끔은 왁자지껄하다못해 거리자체가 들썩인다고 설명해도 될만한 강남거리에 있는 상상을 한다. 정말 가끔이지만 그 사이에 있는 상상을 하는게 기분나쁘지는 않다. 술에 취해 기분 좋게 사람들 사이를 휙휙 지나칠때도 있고 괜히 혼자 센치해져서 저 새끼들은 뭐 저렇게 쳐 마시고 다니는 건지 이해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지나칠때도 있었다. 차려입었다고 차려입었지만 거지같았던 기억만으로도 어깨가 움츠러들때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당당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시절, 그런 생각, 그런 행동들은 아무리 좋게봐도 앞서 이야기한 고결한 단어들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생각을 했다.

한 때는 그러니까 과거의 어느 시점에는 아무튼 나도 누구보다 그런 막중하고 고결한 책임감이라는 것을 비록 내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날이 열에 아홉은 되어도 일단은 가지고 있고 아니면 최소한 없지는 않고 그게 아니더라도 기본은 되어있다는 것이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일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본적인 사항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차버리고 외면해버리는 일들이 나도 모르게 일어난일이지만 알았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고 몰랐으면 있었는지도모를만큼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듯이 일어나게되었다. 이제는 술이 다 떨어져서 더이상 빈 잔을 채울 수 없다.

아무튼 난 책임감이라는 단어 앞에서 사실은 부끄럽고 위축되고 되도록 나에게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 시점부터 가지게 되었다. 더불어 그에 대한 확신, 자신감, 당연함 등에 대해 포기를 해버렸다.

밤 구워 먹듯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굴려서 이야기했지만 아무튼 난 책임감이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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